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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세계 보존을 위한 녹색화학적 접근

  • sunghyunkim343
  • 2016년 2월 24일
  • 12분 분량

창조세계 보존을 위한 녹색화학적 접근

Green chemical approach to the preservation of a God-created world

최초의 지구의 생태계는 완벽했으나 무분별한 인간활동은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과 같은 전 지구적인 재앙을 일으켜 이제는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태학적 위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다스리라”라는 창세기의 ‘문화명령’에 기원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 이는 인간탐욕의 결과이며, 청지기로서 자연계를 관리하고 보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람들이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녹색화학은 환경친화적 화학으로서 환경을 보존하면서도 인류의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녹색화학은 성경적이며, 오늘날 인류가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분야이다. 본고에서는 녹색화학의 개념을 소개하며 적용가능 기술의 몇 가지 예를 살펴봄으로써 녹색화학이 창조세계 보존에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밝힌다.

The original ecosystem of the Earth was perfect. However reckless human activities have led to global disaster such as environment destruction and climate change, which now even threatens existence of human. Although someone blames that this ecologic crisis is rooted on the ‘cultural mandate’ of Genesis that “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the Bible does not teach that way. This is a result of man’s avarice and because man has failed to obey God’s command to take care of nature and preserve it as a steward. As environmentally friendly chemistry, green chemistry makes it possible to pursue ways to preserve environment and do various human activities at the same time. In this sense, green chemistry is biblical. We today, therefore, should take interest in green chemistry and develop it. In this article, concepts of green chemistry is presented and some examples of applicable technologies are given, showing that it could be an alternative to the preservation of a God-created world.

  1. 서론 - 환경문제의 역사적 고찰

환경위기는 전 지구적이다. 한정된 지구 자원의 무분별한 남용과 과도한 개발은 환경파괴를 빠르고 지구적 규모로 진행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기후변화, 온난화와 같은 환경 재앙이 야기되었고 자주 예측 불가능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오염은 지구 대기 및 물의 순환 시스템에 의해 곧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한 두 세대 이전만 하더라도 자원을 개발하고 활용하여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어 환경문제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문제는 과거 개발에만 치중하여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한 댓가를 오늘날 우리들이 치르고 있다는 점이며, 어떠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도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데 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단순히 과학기술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자신과 후손들의 문제로 여기며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급속도로 산업생산의 증대가 일어나면서 물질적 풍요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인구증가가 가속화되고 이에 따른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일반인의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1962년에 발간된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기념비적인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된 이후부터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은 화학물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시하거나 그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적의 제초제, 살충제로 알려진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가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유려한 필치로 기술하고 있다. 봄이 되어 자연에는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고 동물들은 새끼를 낳고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이 보여야 함에도 밖은 조용하다(그림 1). 그 원인을 알아봤더니 DDT라는 단순한 화학물질이 자연계에 잔류되어 동식물에 축적되어 야기된 것이다. 그 이후 DDT 뿐만 아니라 PCB (polychlorobiphenyl), 다이옥신 같은 물질도 생명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6년에는 콜본(T. Colborn), 듀마노스키(D. Dumanoski), 마이어(J. Myers) 세 과학자가 인공 화학물질이 어떻게 환경 호르몬으로 작용하여 동물들의 성적 발달과 행동, 생식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의 도둑맞은 미래(Our Stolen Future)’에서 기술하고 있다. 1995년엔 성층권의 오존 파괴 메카니즘을 밝힌 공로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노벨상이 수여되기도 하였다.

그림 1. 침묵의 봄. 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

지구의 자원고갈까지 고려하여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는 1972년에 로마클럽이 발간한 ‘성장의 한계(The Limit to Growth)’를 들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인류의 미래를 가용 자원, 에너지, 인구, 환경오염, 식량생산 등을 변수로 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한 것이다. 결론은 현재의 소비증가, 인구증가가 지속되면 얼마 못가 부존자원의 급격한 고갈로 인해 성장이 멈출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물론 그 이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새로운 에너지원의 탐색, 환경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예측의 상당부분이 오류로 판명되었지만, 경각심을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이 후 비슷한 종류의 연구와 전망이 많이 보고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국가간 교토의정서와 같은 많은 환경관련 조약, 협약을 체결하게 하여 환경 보전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 환경을 보는 시각

기술지향적인 시각(technocentrism)은 환경을 인간과 자연으로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태도를 취하며, 기계론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적 태도를 취한다. 이 세계관에 의하면 기술만능주의에 입각한 낙관론적인 환경관을 펼친다. 반면 생태지향주의적 시각(ecocentrism)에서는 생태학에 근거하여 자연과 인간의 동등성 또는 인간의 자연에의 종속성을 강조하며 성장한계론을 받아들이고 낙관적이지 못한 미래관을 제시한다. 슈마허(E. F. Schmacher)는 경제학자로서 생태지향주의적 이념 하에 독특한 경제관을 제시하였다. 그의 명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비록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은 아니지만 환경문제에 관련하여 매우 통찰력 있는 분석을 했다. 그는 오히려 불교적 관점에서 불교의 8정도의 개념을 도입하여 경제활동을 할 것을 제안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자원은 자본과 소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본주의적인 경제개념으로는 부존자원들, 예를 들면 화석연료나 기타 다른 광물들은 모두 소득에 속한다. 자기 자본을 갖고 장사를 할 때 소득이 생기면 누구라도 소비하게 되어있다. 반면 자본은 소비하지 않고 가능한 보존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선 자연을 소득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어느 누구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기술력이 있고 자금력이 있으면 마음대로 캐내어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현재의 서구문명을 이룩했지만 한편 자연을 황폐케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기저에는 기술지향적주의적인 환경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경쟁, 자연선택, 적자생존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인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면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어떠한가. 도교사상으로 대표되는 동양사상은 자연을 글자 그대로 스스로(自) 그러한(然) 것으로 보았고 자연과 일체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소위 무위자연(無爲自然)설을 말하는데 인공적인 것을 가하지 않고 자연과 합일되는 사상을 말한다. 이러한 사상에서는 과학의 발달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정전 교수는 일찍이 ‘녹색경제학’에서 다양한 경제지표를 산출함에 있어 환경의 파괴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에 따르면 가령 5%의 성장률을 기록했더라도 환경파괴의 영향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성장률은 그보다 낮게 된다. 이는 매우 현명하고 필요한 방식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면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인가? 성경은 자연을 정복이나 숭배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자연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6일 동안의 창조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가시적인 우주, 자연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인간의 창조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도 피조물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피조물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 사명을 흔히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라고 부르는데 이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가꾸라는 것이다. 창세기 1: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린 화이트(Lynn White Jr.)로 대표되는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생태계 위기의 원인을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경 말씀 탓으로 돌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세속적 환경론자들은 이 성경 구절을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뜻하는 이원론을 옹호한다고 받아들이며 기독교 정신이 인간 중심적이며 무책임한 자연지배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기독교적 환경관을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권위(dominion)를 뜻한다(창9:1-7; 시8:4-8). 그러나 우리의 권위는 한정되고 파생된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 권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은 인간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연을 본래의 의도에 맞게 잘 활용하도록 지음 받았다. 이렇게 인간이 부여받은 직위를 청지기직(stewardship)이라고 하는데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서 집안을 다스리는 자이다. 분명 집 주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도 아니다. 태초에 창조된 피조세계는 보기에 심히 좋았고(창세기 1:31), 이 피조세계는 가시적인 영역뿐 아니라 비가시적인 영역까지 포괄하고 있다(골로새서 1:16).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히브리서 1:3)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시19:1).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우리들도 피조세계를 잘 관찰하고 연구하여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한다. 이러한 사명은 한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듯이 대대로 이루어 가야하는 사명이며, 이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인간과 피조물간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3. 지구에 대한 간략한 고찰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구는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세이건(C. Sagan)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봤지만 결코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바다는 푸른색으로, 대륙의 많은 부분은 녹색으로 덮여있다. 우선 지구의 크기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매우 경이적이다. 만약 지구가 지금보다 더 크다면 지구의 중력이 커져서 메탄이나 암모니아와 같은 가벼운 기체들의 농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요, 만약 지금보다 더 작다면 산소가 외계로 빠져나가 농도가 낮아질 것이다. 그 어느 쪽도 지금의 조건보다 안 좋게 되어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지금보다 가깝거나 멀다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거나 하강하여 역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 될 것이다.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가 약 15도인데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아주 적당한 온도이다.

생명체는 이런 지구의 표면에서만 살아간다. 물론 지구 내부에서는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다. 지표면에서부터 대기가 존재하는 상층부를 대기권(atmosphere)이라 부른다. 대기권은 온도의 분포에 따라 4개의 권역(sphere)으로 나누는데 대기의 순환이 있는 지표면에서 약 10-12 km까지의 부분을 대류권(troposphere)이라 하며 그 이상으로부터 약 50 km까지를 성층권(stratosphere), 그 이상을 각각 중간권(mesosphere), 열권(thermosphere)이라 한다. 각 권역마다 온도의 분포, 화학반응, 대기의 조성 등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권역은 대류권과 성층권이다. 대류권에선 모든 기상현상이 일어나며 생명체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가 많이 존재한다. 성층권은 많은 오존을 함유하고 있어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대류권의 두께를 한번 살펴보자. 약 10km 정도인데 지구의 직경이 약 12750km가 넘는 것을 생각하면 약 0.8%도 채 안 되는 두께이다. 사과를 지구로 생각하면 사과 껍질에도 못 미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류권이다. 성층권까지 고려해도 그 두께는 매우 미미하다. 여러분들은 아마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굉장한 폭발력으로 위를 향해 올라가다가 옆으로 퍼져 마치 버섯모양으로 폭발이 진행되는데 그 이유는 폭발이 대류권 끝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삶은 바로 그 밑의 공간이 어떠하냐에 달려있다. 만일 핵전쟁이 일어나면 그 대류권은 온전치 못할 것은 불문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계속 더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몇 십 년 동안의 지구온도의 변화를 보면 약간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원인으로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를 꼽는데 이의가 없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 약 0.4%로서 질소, 산소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산화탄소는 녹색식물의 광합성에 필수불가결이다. 만약 이산화탄소의 양이 지금보다 적으면 식물의 광합성이 둔화되어 이산화탄소의 소모가 적어지고 따라서 대기의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증가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아지면 식물의 광합성이 활발하게 되어 이산화탄소 소모가 빨라져 결국 대기 중의 농도가 적정한 값을 유지하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방출량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전 세계의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연소하면 이산화탄소가 나오는데 그 방출량이 현재 식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아 공기 중에 계속 축적이 되며, 지표면에 도달한 태양광이 적외선 형태로 우주로 방출이 되어야 하는데 마치 온실처럼 이산화탄소가 적외선을 흡수하여 지구의 온도가 서서히 상승한다고 한다(그림 2). 더구나 지구의 허파라고 불려지고 있는 아마존 유역의 열대우림(rain forest)이 개간 등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어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인 효과는 기상이변 현상이다. 엘리뇨란 여름철에 태평양의 수온이 예년보다 몇도 더 상승하여 이와 맞닿고 있는 공기층이 어마어마한 열을 흡수하여 생기는 기상이변 현상인데,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대기의 순환에 의해 예측치 못한 기상이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림 2.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가를 보여주는 Keeling 곡선

4. 신음하는 피조물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피조물은 신음하고 있다. 피조물은 지금까지 우리와 같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으며(로마서 8:22),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로마서 8:19), 즉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신록이 우거진 계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물고기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섭리를 맛보려면 자연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한편 잘 살펴보면, 이 아름다운 자연에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잡혀 먹힐 수밖에 없고 자연에 부적합한 것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자연에 실은 엄청난 부조리, 모순이 공존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철저히 잘못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진화론적인 관점은 이러한 자연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유는 모르지만 태초에 물질이 존재했었고 그 물질이 크게 터져(빅뱅)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과 같은 우주가 되었고, 시간의 어느 시점에 생명이 출현하여 진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이 생겨났다고 하는 이론에서는 어차피 모든 게 우연적이며 적자생존을 통해 자연에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는데 피조물의 신음소리가 들릴리 만무하다. 혹 들린다 하여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성경은 그에 대한 답을 명확히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인간뿐 아니고 다른 피조계까지 타락하였다. 아무 죄 없는 땅까지 저주받은 것을 보면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우월성이 있음이 명백하다. 땅은 이제 아름다운 소산뿐 아니라 가시덤불과 엉겅퀴도 내게 되었다. 즉, 창조시 완벽한 샬롬의 상태에 있었던 피조물들 간의 관계도 왜곡되어 생존경쟁의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쓸데없는 것, 해로운 것, 무익한 것은 하나도 만드시지 않았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 그러한 것들이 생겨난 것이다. 엉겅퀴를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으셨지만 타락의 결과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는 기존의 피조물의 기능이 악하게 바뀐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현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환경을 보전해 나갈 수 있는가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있는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를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본고에서는 녹색화학이 그 대안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환경파괴와 환경오염의 주범이 화학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녹색화학은 우리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화학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꿈으로써 환경오염의 주범이 환경을 정화하고 보존하는데도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것이 청지기적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분야임을 보이고자 한다.

5. 녹색화학의 개념

‘녹색화학’이란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녹색’은 환경친화적이라는 것을 뜻하며 이것이 ‘화학’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단어가 나타내듯이 ‘녹색화학’은 환경 친화적인 화학을 의미한다. 국제 순수-응용화학연맹이 채택한 정의에 의하면 녹색화학은 “유해물질의 사용, 유해물질의 발생을 줄이거나 제거하기 위해 화학 생성물이나 공정을 발명 ․ 설계하고 응용하여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화학은 환경 비 친화적이었다는 말인가? 대답은 상당부분 ‘그렇다’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비록 화학자들이 의도하진 않았다 할지라도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미쳐왔다. 물질합성의 목적이 해충의 박멸, 잡초의 제거, 질병의 치료와 같이 일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해결하려는데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물질이 이차적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단적인 예가 위에서 언급한, 기적의 물질로 까지 칭송을 받았던 살충제 DDT로서 지금은 사용 금지되어 있다.

환경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의식이 점점 높아감에 따라 환경을 해치지 않고 개발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근자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즉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또는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라 불리는 개념으로서 녹색화학과 일맥상통한다. 환경을 고려함에 있어 원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한 후 오염된 환경을 정화하는 것은 차선책에 불과하다. 최선은 아예 물질의 합성단계에서부터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환경오염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거나 없애는 것이다. 녹색화학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화학을 다시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즉, 녹색화학은 유기화학이나 물리화학 등과 같은 화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기존의 화학을 다룸에 있어 환경친화적인 관점에서 추구하자는 것으로 화학의 전 분야를 망라한다. 작게는 유해물질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거나 전혀 없도록 또한 에너지 소비가 최소가 되도록 화학반응이나 공정을 설계하는 것이고 크게는 청정에너지 생산, 환경친화적 생물전환, 환경친화적 분석방법 등도 포괄한다.

녹색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설계(design)’이다. 녹색화학적 목적을 성취하려면 일련의 기준 및 원리가 제시되어야 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화학자들은 반응을 출발단계에서부터 합성된 물질이 사용되기까지 전 과정을 환경친화적이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따라서 녹색화학은 우연히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엔 기존의 합성방법, 공정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적 노력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 녹색화학적 합성경로를 고안해 내거나 새로운 물질을 설계하는 것은 때로 혁신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은 쉬울 수도 있고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학자들의 의지이다. 의지적 노력 없이 녹색화학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녹색화학은 청정화학(clean chemistry), 자비로운 화학(benign chemistry), 환경친화화학(environmentally friendly chemistry), 지속가능한 화학(sustainable chemistry)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6. 녹색화학의 원리

녹색화학의 선구자인 아나스타스(Anastas)와 워너(Warner)는 화학자들이 지녀야 할 12가지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 원리를 합성과 공정에 적용하면 녹색화학이라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물질을 다루는 연구자들은 이 원리를 안내자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고 반응의 효율 및 경제성도 고려해야 한다. 환경친화적이면서도 효율이나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녹색화학적 합성법이나 반응공정을 꾸준히 개발하고 이러한 내용을 교육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1) 폐기물이 생성된 후에 처리하거나 정화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폐기물 발생을 막는 것이 좋다.

2) 사용된 원료가 최종 생성물에 모두 포함되도록 하는 합성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3)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독성을 띠지 않거나 적게 띠는 물질을 사용하는 합성법을 개발해야 한다.

4) 기능성은 유지하되 독성이 적은 물질을 개발해야 한다.

5) 가능하면 용매, 분리제와 같은 보조물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꼭 필요하다면 독성이 적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6) 환경과 경제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소모량을 최소화하도록 합성법을 고안해야 한다. 실온, 대기압에서 진행되는 합성법을 개발하도록 한다.

7)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실용성이 있다면 원료는 고갈성이 아닌 재생가능해야 한다.

8) 가능하다면 합성과정에서 불필요한 유도화과정(막음기, 보호기/탈보호기, 일시적인 물리/화학적 공정의 변형)을 피해야 한다.

9) 화학양론적(stoichiometric) 시약보다는 촉매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10) 화학물질은 기능을 다한 후 환경에 남아있지 않고 무해한 물질로 분해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11) 공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유해물질이 형성되기 이전에 통제할 수 있는 분석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12) 화학공정에 사용되는 물질은 누출, 폭발, 화재와 같은 사고 가능성이 최소화되도록 선택되어야 한다.

위 원리들을 보면 원천적으로 환경 오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함이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필요한 물질의 생산 시 화석연료가 아닌 가능한 바이오매스를 이용하도록 하며 부산물의 발생을 줄이고 공정 단계를 최소화하며 부산물은 환경에서 쉽게 분해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7. 녹색화학의 예

1) 포도당을 이용한 아디프산의 합성

나일론의 원료가 되는 아디프산은 매년 약 25억 톤이 생산된다. 기존의 방법은 발암물질인 벤젠을 이용하여 합성하는 것이나 이는 녹색화학적 방법이 아니다. 식물계가 생산하는 포도당을 출발물질로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었다(그림 3). 이 방법은 화석연료를 이용하지 않고 유해성 부산물을 발생시키지 않으므로 녹색화학적 방법이다.

그림 3. 기존의 방법(위 경로)과 녹색화학적 방법(아래 경로)에 의한 아디프산의 제조

2) 폐수를 이용한 전기발생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폐수가 가정, 공장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염물질의 농도가 높아 직접 방류할 수 없고 일단 물재생센터에서 처리하여 방류 기준을 맞춘 후 강이나 하천으로 방류하게 된다. 전국의 물재생센터에서 수처리에 드는 연간 비용은 수조원의 규모로서 오로지 물을 정화하는데 쓰여진다. 그러나 폐수에 함유되어 있는 각종 유기물들도 에너지원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생물을 이용하여 유기물을 분해하며 동시에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 기술을 미생물연료전지라고 하는데 폐수처리와 전기발생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대단히 녹색화학적 방법이다(그림 4).

그림 4. 미생물연료전지의 작동 원리

3) 인공광합성에 의한 전기 발생

단 1시간 동안 태양에서 지구로 유입되는 에너지는 전 지구가 일 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에 상당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문제는 어떻게 이 에너지를 활용하는가이다. 광합성은 태양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으로서 이를 모방하여 원하는 전기 생산, 수소 생산, 탄수화물의 생산 등을 이루는 것을 인공광합성이라 한다. 실리콘 태양전지를 비롯한 다양한 태양전지와 물분해용 광촉매 등이 이에 해당된다. 아래의 예는 아직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녹색식물의 광합성이 일어나는 장소인 엽록체를 분리하여 이것을 전기화학적으로 이용하여 전기 발생을 시도하는 연구이다(그림 5). 비록 실제 광합성에서처럼 탄수화물이 생산되지는 않지만 명반응을 이용하여 물을 분해하며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 역시 유해한 부산물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매우 녹색화학적인 에너지 생산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5. 틸라코이드에서 일어나는 명반응(왼쪽 그림)과 이를 이용한 태양전지의 원리(오른쪽 그림)

8.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녹색화학은 지구의 환경보전을 위한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한정된 지구 자원을 이용하되 환경친화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아직까지도 유효한 문화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일부 환경론자처럼 환경을 절대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켰고 결국 인간이 환경으로부터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 문제만 해결되면 마치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강조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이들은 지구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환경으로부터의 인간의 고립이 궁극적 문제인가? 성경은 결코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결과, 모든 관계가 왜곡되기 시작하였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인간과 자연 또는 자연계 내에서도 왜곡된 관계가 발견된다. 그러나 이 모든 왜곡과 모순의 근원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분리이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그 속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해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거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라는 고상한 이름 아래 자연을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바울이 잘 지적했듯이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로마서1:25).” 자연을 보호해야 하지만 신성시하거나 경배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한 것과 같다(히브리서3:3). 녹색화학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환경보전을 위한 유력한 대안임에는 틀림없고, 특별히 과학자들은 그러한 관점에서 연구를 해야 하겠지만 이 역시 분명한 한계가 있다. 환경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9. 참고문헌

1)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원제: Silent Spring, Rachel Carson, 1962)

2) 우리의 도둑맞은 미래, 콜본, 듀마노스키, 마이어스 (원제: Our Stolen Future, Colborn, Dumanoski, Myers, 1996)

3) 작은 것이 아름답다, 슈마허 (원제: Small is Beautiful, E. F. Schumacher, 1973)

4) 녹색경제학, 이정전, 1994,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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