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의 성경적 기초
- 김성현
- 2016년 2월 24일
- 15분 분량
창조론적 관점에서 본 자연과학의 성경적 기초
Biblical Basis for Natural Science from a Creationism Viewpoint
요 지: 현대의 과학은 자연주의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는 자연이 궁극적 실재이고 창조자는 단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며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 신념은 다윈의 종의기원 출간 이후 과학계 리더들을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으며 이젠 현대의 지배적인 세계관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생각해야 할 근거가 매우 빈약함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자연계는 물질을 넘어선 절대적인 창조주를 증거하고 있으며 창조주 없이는 질서에 대한 근거나 보편법칙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질서와 보편법칙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은 궁극적으로 창조주를 가리키며 그 창조주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다. 본 논고에서는 성경에 나타난 자연과학의 토대를 살펴보고 자연과학의 각 분야가 어떻게 성경에 기초하고 있으며 창조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논한다.
Abstract: Modern science is based on naturalism. This is belief that nature is an ultimate reality and the creator is just a product of human imagination, and thus everything can be explained by interactions between matters. This belief has been a dominating ideology that prevails among leading scientists in science field since publication of 'Origin of Species' by Charles Darwin, and became a very concrete contemporary worldview. However, close scrutiny of this belief reveals its shallow base. Rather nature testifies the absolute creator beyond matters and without him, it is not possible to explain orders in nature and universal laws. Therefore, natural science that search for orders and universal laws eventually indicates a creator, and this creator is the God of the Bible. This paper deals with biblical basis for natural science, and discusses how each branch of natural science is based on the Bible and how it is viewed from a creationism viewpoint.
1. 서 론
과학적 연구는 이 우주에는 질서가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 이루어진다. 이 전제가 없으면 체계적인 탐구는 가능하지 않다. 이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적 법칙도 존재하게 된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질서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누가(아니면 무엇이) 이 질서를 부여했는가. 이런 질문은 어떤 답을 하는가에 따라 그 뒤에 이어지는 논리적인 귀결을 매우 다르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현대철학의 주류를 이루며 자연과학의 근간이 되는 자연주의에 따르면 물질이야말로 궁극적 실재이다. 태초에 물질이 있었고 스스로 자기조립하고 진화하여 우리가 보는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생각이 과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현대사회에 있어 과학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권위에 비춰볼 때 자연주의는 당연히 사실로서 받아들여지며 이에 반하는 의문이나 질문은 처음부터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 자연주의적 전제는 절대적인 진리로서 지금까지 인정되어 왔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다윈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1859년 '종의기원'의 출간 후 그때까지 주류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던 목적론적인 관점은 이제 '진화'라는 무목적적이며 인도되지 않은(unguided) 철저히 물질론적인 사상으로 대체되었다. 하바드 대학의 고 고생물학자인 심슨(George Gaylord Simpson)은 인간은 이러한 무목적적 자연과정의 결과라고 한다[1]. 이 시대 진화의 대변자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자연을 만든 시계공은 없으며 만일 있다면 그것은 의식도 없고 목적도 없는, 그러나 무작위적은 아닌 자연선택이야말로 시계공인데 눈먼시계공이라고 말하고 있다[2]. 따라서 눈먼시계공 이론은 창조주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직 자연선택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창조해 낸 원동력이라 말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학계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현대인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법학자 존슨(Phillip Johnson)은 전혀 다른 말을 한다. 그에 의하면 자연주의는 단지 형이상학이며 진화론은 그 토대가 매우 빈약하다고 한다[3,4]. 과학의 이름으로 전파되는 진화론은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체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며 사실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럼 과연 과학의 기초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본고에서는 창조론적 관점에서 성경에 나타난 현대 자연과학의 성경적 토대를 살펴보고 자연과학의 각 분야, 특히 물리화학, 생물학, 지질학이 어떻게 성경에 기초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성경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무슨 논의든 출발점이 있어야 하며 과학을 논함에 있어 그 질서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기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자연과학의 성경적 토대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며 많은 과학적 오류들로 가득차 있다는 비난이 예로부터 제기되어 왔다. 특별히 창조와 관련된 창세기 기사에 관해서는 이것은 단순한 신화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가르쳐져 왔다. 이 창조기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조차 문자적인 해석 대신 은유적이거나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곤 한다. 성경에는 어떠한 수식이나 어떤 현상에 대한 기술적인 묘사가 없다는 점에서 과학책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오히려 그러한 내용들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곧 낡은 지식이 되어 버렸을 것이고 따라서 성경은 믿을 만한 아무 근거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아울러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 비록 수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표현은 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러한 내용들로부터 과학적인 토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질서를 부여하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과학적 탐구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믿음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고전14:33)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문화명령(창1:28)을 주셨으며 이에 따라 우리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모든 인간현상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1) 가시적 3차원 우주
이 우주는 시간, 공간, 물질로 이루어진 가시적인 3차원 우주이다. 어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으면 다른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내용을 창세기1:1에서 발견할 수 있다. 태초는 시간을, 천(heavens)은 공간을, 지(earth)는 물질을 뜻한다. 즉, 이 우주는 분명한 시작이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가시적 3차원 우주창조로부터 비롯된다. 시간, 공간, 물질은 다시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그림1).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수 있으며, 공간은 길이, 넓이, 높이로 나눠 3차원이 되며 물질은 에너지, 움직임, 현상또는 원인, 사건, 결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또한 삼위이신 하나님의 특징을 반영한다고 생각된다[5].

그림 1. Tri-universe. The physical universe is an amazing trinity of trinities. The only adequate cause to account for this remarkable effect is that it was created to reflect the triune nature of the God who created it.
2) 인과법칙
인과법칙은 모든 과학법칙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인(cause)이 있으면 결과(effect)가 있고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한 원인이 존재한다. 원인을 계속 캐 들어가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되도록 한 최초의 원인에 도달한다. 이 최초의 원인은 원인되지 않은 원인(uncaused cause)로서 과연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인과의 법칙을 초자연적인 현상을 부정하는데 이용하였다. 성경의 기적을 인과법칙에 어긋난다고 하여 거부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적은 더 높은 차원의 원인이 작동한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원인이 결과를 야기할 때 100% 전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인은 결과보다 크거나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궁극적 원인을 찾으려 계속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원인에 포함된 정보량은 점점 증가한다(그림2).

그림2. 결과는 원인보다 클 수 없다. 또 그 원인은 이전의 원인보다 클 수 없다. 궁극적으로 제1원인은 무한해야 한다.
따라서 제1원인은 무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원인은 바로 성경의 하나님이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아니하는 제1원인은 무한해야 하며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제1원인은 영원해야 한다. 무한한 에너지의 제1원인은 전능해야 하며 무한한 복잡성의 제1원인은 전지해야 한다. 이러한 제1원인은 하나님밖엔 없다. 성경은 이 하나님은 또한 사랑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시며 인격적이라고 말한다.
3) 과학법칙
지구에서뿐 아니라 전 우주적으로도 동일하게 성립하는 과학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또한 그 과학법칙이 수학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며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도 경이롭다. 일찍이 맥스웰(James Clark Maxwell)은 진화론으론 이러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영원하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말했다.
여러 과학법칙 중 열역학 제1, 2법칙은 지금까지 한번도 예외가 발견되지 않은 법칙이다. 제1법칙이 말하는 바는 에너지 보존이다(그림3). 에너지는 창조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으며 단지 형태만 바뀔뿐이다.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그렇다면 최초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는가. 아인시타인에 의하면 에너지와 물질은 등가이므로 이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들, 그 에너지의 기원은 과연 무엇인가. 이에 관해 진화론은 아무 대답도 주지 못한다. 그냥 그것을 수용할 뿐이다. 기원을 모르고도 과학적 이론을 전개할 수 있으나 그에 함축된 궁극적 의미는 발견할 수 없다. 성경에 의하면 이 에너지의 기원, 즉 열역학 제1법칙의 기원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무에서 에너지가 창조되었고 그 때 이후로 제1법칙이 성립하여 왔다. 물론 하나님의 창조적 기적으로 드물게 물질이 창조되거나 없어질 수 있지만 보편적으론 이 법칙이 항상 성립한다. 한편 열역학 제2법칙은 비록 에너지는 보존되지만 가용에너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감소함을 가리킨다. 즉, 우주의 무질서도(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그림3).

그림3. Two laws fo thermodynamics, as based on all observable scientific data, point back to special creation of the universe. The two basic evolutionary cosmogonies, on the other hand, must be based on nonobservable processes, simplyto avoid the implication of creation.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비록 증가속도는 낮출 수 있지만 엔트로피의 증가를 감소시킬 수는 결코 없다. 질서는 점점 무질서로 되며 복잡한 구조는 점점 단순하게 된다. 이는 인간에겐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이 법칙은 인류의 미래는 유토피아가 아니고 파국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진화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진화론은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우연이란 과정에 의해 단순한 생명체에서 복잡한 생명체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예외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수학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지금까지 한번도 이 법칙으로부터 진화가 관찰된 적이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에서 이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 3장의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서 전 우주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아담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땅이 저절로 아름다운 소산을 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땅은 저주를 받아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생산하게 되었다. 따라서 음식을 구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초기 완전한 창조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완전한 상태로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하기 때문에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가능하다.
4) 자연과학과 그리스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함께 하셨고 창조사역에도 함께 일하셨으며 지금도 함께 역사하고 계신다. 요한복음 1:1~4에선 만물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어졌으며 골로새서 1:16에선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만물의 주인은 바로 창조주 예수님이시며 학문의 주인도 바로 그이시다. 특별히 골로새서 1:16은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도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증거한다. 가시적 세계를 연구하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학문, 철학, 심리학, 음악 등도 다 하나님의 학문이며 그것의 주인도 그리스도시며 따라서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는 것이다. 많은 학문의 이름에 -logy가 붙는다. Biology, geology, psychology, physiology 등에 -logy가 붙는데 이는 logos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요한복음으로부터 말씀이 logos인데 이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사람들이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학문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1:20은 위대한 명제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 가시적인 세계를 주신 이유는 바로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 자연을 바라볼 때 이를 만드신 분을 알 수 있으며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물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이다. 영원하신 능력은 영원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이다. 또한 '신성(Godhead)'이다. 이는 창조사역에 함께 하신 그리스도께서 또한 피조세계에 드러나 있음을 말한다. 골로새서 2:9에 그리스도 안에 모든 신성의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하였다. 이제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히1:3).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자들은 마땅히 연구대상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롬11:36)"기 때문이다.
3. 각 분야 개관
1) 물리과학
물리과학(physical science)은 자연과학 중 생명현상에 속하지 않은 물질의 구성성분, 이들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물리학, 화학, 천문학 등이 이에 속한다. 이의 기원은 창조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원소는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92종과 인공적으로 합성한 원소를 합하여 110여개가 된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은 이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물질은 달라도 동일한 원소가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첫째날에 하나님이 물질을 창조하심으로 이후 만드신 대기, 땅, 천체, 생명체에 동일한 물질을 사용하셨음을 암시하고 있다. 범죄한 아담에게 하나님께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말씀하셔 인간의 육체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흙에서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소를 찾을 수 있다. 이 원소들은 무작위적인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니고 주기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원소와 결합할 때도 일정한 규칙을 따른다. 그림4에서처럼 주기적 성질에 따라 원소를 배열한 주기율표를 만들어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보존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만물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계시다는 말씀(느9:6)에서 알 수 있다. 비록 후에 만물이 새롭게 되겠지만 그 자체는 영원히 존재할 것을 말한다(시78:69).

그림4. 주기율표
또한 제2법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질서도가 증가함을 보여주는데 이는 진화론과 정면으로 배치됨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이 지구는 고립계(isolated system)가 아닌 닫힌계(closed system)이므로 외부에서 에너지의 유입이 있으면 질서도가 증가할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 비평형열역학을 이용하여 무질서내의 질서생성이 가능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자연계에서 발견된 바는 없다. 오히려 외부에서의 에너지의 유입은 엔트로피의 증가속도를 더욱 가속시킨다고도 주장되고 있어 이 분야는 앞으로 더욱 탐구가 필요하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우주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면, 우주는 고립계이다[6]. 따라서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반드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우주자체도 빅뱅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진화되어 와 지금의 매우 잘 조직화된 우주를 생성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다윗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라고 찬양하였다. 우주를 바라볼 때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우주에 대해 더욱 경이로움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그 크기를 알 수 없으며 별들의 수도 정확히 모른다. 성경은 바다의 모래알처럼 그 수가 무척 많다고(창26:4) 말하지만 정확히는 모른다. 아마도 무한히 많을 것이고 이는 우리의 사고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우리의 유한한 지식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선 그 별 하나하나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셨다는 사실이다. 그저 인간을 위해 그 많은 별들을 만드시고 그냥 방치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아신다고 했다.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사40:26)." 별들 하나하나는 다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으며 주어진 법칙을 따라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보기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일지라도 별들은 매우 다양하다.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다양하고 밝기가 다양하고 온도가 다양하고 구조가 다양하고 운동이 다양하다. 고린도전서 15:41에선 이를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표현했다. 표준 다이어그램인 Hertzsprung-Russel(HR) diagram(그림5)에 따르면 별들을 여러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림5. Hertzsprung-Russel diagram and stellar variety.
x-축을 표면의 온도, y-축을 밝기로 하여 별들을 배치하면 위의 그림과 같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크면 밝기도 더 밝다.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별들을 주계열이라 하며 대부분의 별들이 이에 속한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별들은 백색왜성, supergiant, giant 등이 있다.
이렇게 수많은 별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별은 '해'이다. 크기와 밝기는 보통 별이지만 주어진 임무는 매우 독특하고 중요하다. 해는 낮과 밤을 구별하며 지구에 빛을 비추며(창1:14,15) 온기를 제공한다(시19:6). 해가 없이는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 수 없다. 해는 성경에 175번 언급되어 있다. 달 역시 매우 중요한데 40번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구가 가장 중요하다. 이 지구는 인간이 살아갈 곳일 뿐 아니라 후일 새롭게 되어 새 예루살렘이 임할 곳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천체의 창조의 순서가 지구-해-달-별이라는 성경의 기록은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완전히 다르다. 진화론에선 빅뱅에 의해 별들이 만들어졌고 지구는 태양에서 분리되어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과 진화론은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2) 생명과학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이다. 이미 파스퇴르가 증명한 것처럼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나오며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생명의 진화뿐 아니라 무생명체에서 생명체로의 '화학진화' 또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떠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물질을 만유의 기원으로 보았을 때 도출되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흐름이다. 원시수프니 코아세르베이트니 하는 개념들은 저들의 반성경적, 반창조주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지적 허영에 다름 아니다. 밀러의 실험을 근거로 환원성 무기물로부터 아미노산이 합성되고 아미노산이 결합하여 생명체의 한 단위인 단백질이 합성되었다고 주장하나 이미 그러한 방식으론 생명현상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선 지구의 초기 상태가 환원성이었다는 증거가 없고, 실험조건인 밀폐된 계와는 달리 지구 환경은 개방된 계이기 때문에 공급된 에너지가 원하는 유기물을 생성하리라고 보기가 어렵다. 또한 만들어진 유기물이 복잡해져가는 중합반응이 과연 원하는 방향으로 일어났을까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광학 이성질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유전법칙은 더욱 더 진화를 부정하며 창조를 나타낸다. 1865년 위대한 연구결과가 오스트리아 부린의 수도원장이었던 멘델에 의해 발표되었다. 오늘날 멘델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유전법칙은 한마디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이론이다. 각 종은 자기와 동일한 종을 생산하지 다른 종이 태어날 수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 당시는 이미 다윈의 진화론이 널리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이름 없는 수도원장의 결과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성경에 종의 불변성과 유전법칙이 나와 있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동식물을 만드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종류(kind)가 과연 종(species)와 같은 개념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확실치 않지만, 원래 수많은 종들이 따로 만들어 졌고 이 종들이 불변인 것만은 분명하다. '종류대로'란 단어가 1장에만 10번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무척 강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더욱 재미난 사실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살면서 재산을 늘리는 과정이다. 창세기 30장에 야곱은 양이 새끼를 낳을 때 알록달록한 양이 나오면 자기 것으로 하고 흰 양이 나오면 라반 것으로 하자는 제의를 한다. 라반이 동의를 한 것으로 보아 아마 흰 양새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의 흰 양떼를 치면서 몇몇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꺾어 시냇가에서 양들이 교미할 때 보여 주었더니 흰 양에게서도 알록달록한 양새끼들이 태어났다. 유전학적인 지식을 갖고 보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비록 야곱은 양은 교미할 때 본 모양대로 새끼를 난다는 고대의 풍습을 따랐을지 모르나 흰 양의 유전자내에도 알록달록한 양이 나올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만 그 형질이 열성이라 나타나는 빈도가 적었을 뿐이다. 즉 유전법칙이 성립하고 있음을 이 성경기사는 보여 주고 있다. 지금 우리는 DNA가 바로 유전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림6). 이 유전법칙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생물학이 지금보다 더 발전해 있을 것이다.

그림6. DNA
진화론에 따르면 종들 간의 진화가 가능하다. 다윈은 5년간 비이글호를 타고 다니며 세계 곳곳의 동식물을 관찰한 결과 종(species)은 불변이 아니며 변화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며, 1859년에 발표한 종의 기원에서 그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종들은 단일종 또는 몇몇 종으로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원동력으로서 자연선택이라는 자연의 메카니즘을 들었다. 후에 돌연변이가 발견되어 신다윈주의에서는 자연선택과 돌연변이를 진화의 원동력으로 본다. 즉, 각 개체는 조금씩 개체변이를 일으키며 이것이 자연에 의해 선택되어 유전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예가 관찰된 적이 있는가. 다윈도 그랬고 현대의 최고 진화학자들조차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종간의 진화의 예를 단 한건도 들지 못한다. 도킨스가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엉뚱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드는 예라곤 인위적인 품종 개량, 내성이 생기는 현상들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종간의 진화의 증거인가. '종류대로'란 성경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인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 허구를 존슨은 1991년에 출판한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에서 예리하게 파헤쳤다[7]. 이 책에서 존슨은 진화론이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존슨으로부터 시작하여 최근 진화론을 반박하는 강력한 이론으로 '지적설계' 이론이 등장했다. 베히(Michael Behe)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에 따르면 생명체의 가장 단순한 구조라도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각 성분들은 더 이상 단순한 구조로 만들 수 없다[8]. 이 성분들은 각각 생성되어선 구조가 올바로 동작할 수 없고 동시에 존재하여야 한다. 진화로 이러한 구조가 생성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지적인 존재를 가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아주 단순한 쥐덫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비록 단순하지만 한가지 성분이라도 없으면 쥐덫은 작동하지 않는다(그림7).

그림7.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보여주는 쥐덫.
수학자 뎀스키(William Demski)는 복잡특수정보(complex specified information, CSI)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러한 정보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고 외부에서 유입이 되어야 함을 수학적으로 밝혔다[9]. 그런데 생물계에선 DNA가 바로 CSI에 해당되므로 이는 외부의 지적인 존재를 증명한다고 하였다. 또한 진화는 정보가 증가하는 과정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돌연변이는 결코 정보를 증가시키지 않음을 입증했다.
비록 지적설계 운동에선 창조주 하나님을 직시하지는 않지만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지적인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생명체도 창조하셨고 그 안에 고유의 유전정보를 심어 놓으셔 대대로 이어지게 하셨다.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생명의 비밀과 생명현상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것이며 그 안에는 창조주의 지혜가 담겨있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지금까지 그러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여 왔고(롬1:21~23) 하나님의 자리에 진화론을 앉힌 것이다.
3) 지구과학
지구는 인간이 거할 곳으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창조하셨다(창세기 1장). 지구 위에 대기권, 수권, 암권, 생물권을 만드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따라서 지구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는 마땅히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지구의 태양계 내에서의 위치, 크기 등은 놀랍도록 미세 조정되어 있다[10].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산소의 존재이다. 만일 지구가 현재의 크기보다 작으면 중력도 작아져 산소를 포함한 가벼운 기체들은 우주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대신 이산화탄소와 같은 무거운 기체만 지표상에 존재하여 숨을 쉴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지구가 현재보다 커 중력이 커진다면 산소보다 가벼운 기체, 예를 들면 암모니아, 메탄, 수소와 같은 기체의 농도가 훨씬 증가하여 역시 호흡곤란을 일으켜 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지구의 크기는 최적으로 맞춰진 셈이다.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놀랍도록 잘 맞춰져 있다.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너무 뜨거워져서 물은 다 증발해버리고 아무도 살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물은 다 얼어붙고 역시 생명체는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는 15도인데 이는 살기에 아주 적당한 온도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고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다. 만일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적도근방은 너무 뜨겁고 양 극지방은 너무 추울 것이며 계절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8:22에 땅이 있는 동안에는 계절의 변화와 낮과 밤이 계속있을 것을 약속하셨다. 지표의 70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물이 적도 근방에 많이 몰려 있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 물은 알려진 물질 중에서 비열이 가장 크다. 즉 물은 쉽게 더워지지도 쉽게 식지도 않는다. 만일 땅이 적도 근방에 몰려 있었으면 일교차가 너무 심해 살기가 아주 곤란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의 큰 비열 덕분에 지구의 기상조건은 잘 유지되고 있다.
지구의 현재의 상태는 예로부터 격변을 증거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퀴비에(Baron Cuvier)에 의해 주장된 격변설(catastrophism)은 라이엘(Charles Lyell)이 동일과정설(uniformita- rianism)을 주장할 때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라이엘은 지질학적인 과정은 매우 천천히 일어나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과거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다윈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쳐 생물계의 진화이론을 내놓게 했다. 동일과정설은 노아홍수와 같은 대격변을 부정한다.
격별설에서의 격변은 성경의 노아의 홍수를 말한다. 이 격변은 전 지구적인 것이어서 지구 표면의 형상은 그 이전과는 아주 다르게 되었으며, 수많은 화석과 석유, 석탄 등의 화석연료도 이 시기에 생성되었으며 대륙의 이동, 기후의 변화 등도 이 격변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일한 지구를 바라보는 이 두 이론은 근본 가정과 해석 등, 모든 면에서 상이하기 때문에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 성경자체의 기록으로부터 노아의 홍수를 살펴보면 내부적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40일 동안 쉬지 않고 내린 물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둘째날 하나님께서는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궁창 위와 아래에 두셨다. 궁창은 하늘을 뜻하고 궁창 아래의 물은 강이나 바다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 과연 궁창 위의 물은 무엇일까. 아마도 엄청난 물이 수증기 형태로 전 지구를 감싸고 있었을 것이라고 창조론자들은 생각한다. 수증기 형태로 있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고 투명하기 때문에 태양빛은 자유롭게 지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체에 해로운 자외선은 물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흡수된다. 이러한 수증기 층을 canopy라 하며 지구의 온도를 따뜻하게 해주는 보온효과를 나타내 생물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기후를 제공했을 것이다(그림8).

그림8. Water canopy
홍수로 인해 이 물층이 없어졌을 때 인간의 수명도 급격히 감소한 사실도 홍수의 역사성을 증거해 준다. 하나님께선 물론 홍수 때 쓰려고 궁창 위에 물을 두시진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노아의 홍수 때 비는 어떻게 온 것일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홍수의 순서는 먼저 깊음의 샘이 터지고 다음에 하늘의 창이 열고 비가 내렸다(창7:11,12). 깊음의 샘은 아마도 화산작용과 같은 지질작용이었을 것이다. 궁창위의 물(수증기)이 응결되어 비로 되기 위해서는 핵이 필요하다. 화산재는 아마도 이러한 핵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요즈음도 인공강우를 할 때 비행기로 수증기가 응결할 수 있도록 화학약품을 살포한다. 성경의 기록은 세세한 면에서까지 정확하다. 셋째, 홍수 때 살아남은 다른 사람이 없었는가? 창세기 기록에 빠진 것이 없다면 아담이 창조된 때를 절대년도 0년으로 하여 홍수가 일어난 연대를 계산하면 1656년이다. 당시 노아의 할아버지였던 므두셀라가 가장 오래 살았는데 그가 죽은 해가 바로 1656년이다. 이것은 놀라운 기록이다. 만일 므두셀라가 1살이라도 많은 970살 살았다면 홍수가 일어난 다음해에 죽었다는 말이 되어 홍수의 신빙성이 의심되지만 성경의 기록은 아주 정확하다.
욥기는 성경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욥기가 쓰여진 목적중 한가지는 태초의 창조의 모습과 중요성을 재강조하는데 있지 않았나 싶다. 놀라운 창조의 모습이 군데군데 나타나 있다. 첫째, 창조와 타락과 저주.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셨다는 사실(38:4),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내용(33:4~6)이 있고 심지어 범죄한 아담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31:33 개역개정성경에는 사람으로 번역됨). 타락 후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여러 군데에 나와 있고(10:9, 14:1~4, 34:14,15) 땅도 저주 받아 찔레와 잡풀이 난다는 사실은(31:40)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창3:18)을 생각나게 한다. 둘째, 노아의 대홍수. 홍수의 원인이 인간의 사악함 때문이었고(22:15~17), 격변적이었던 홍수의 모습(9:5~8, 12:14,15, 26:11-14)과, 홍수 이후의 달라진 지구 환경에 대해서도 바다의 경계가 정해지고(26:10, 38:10,11) 기상변화로 인한 대기의 흐름(37:9~12)(그림9)과 눈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38:22).

그림9. Hydrologic cycle on earth.
셋째, 인구의 분산. 바벨탑사건 이후 인구의 분산에 대해 12:23~25에서 만국의 두목들을 유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욥기에 나오는 많은 부족의 이름이 창세기 10장에 나온다는 사실도 인구의 분산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해 준다. 과학적인 여러 내용도 욥기에 풍부하게 담겨 있다. 물의 순환과 상변화는 근세에 들어와서야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인데 이미 욥기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36:27,28, 37:11, 26:8) 지표의 풍화, 침식작용(14:18,19)과 지구가 공간에 떠 있다는 사실(26:7)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밖에도 천체에 관해선 최근에 밝혀진 묘성과 삼성에 관한 비밀이 이미 욥기에 나와 있다(38:31,32). 무엇보다 40, 41장에 나와 있는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란 동물은 아마도 공룡을 의미할 것이다. 즉, 공룡은 인간이 있기 전에 살았던 동물이 아닌 인간과 같은 시대를 살았었다. 요약하면, 욥기는 성경 중 특히 창세기의 역사성과 신빙성을 입증해 주어 창세기의 기사가 단순한 교훈적인 내용이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증거하며, 최근에서야 밝혀진 여러 과학적인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다.
4.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비록 현대적 의미의 과학책은 아니지만 성경기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많은 과학적인 내용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인 내용은 현대 자연과학적 내용과 일치한다. 지금까지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성경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겸손히 자연을 탐구하였다. 갈릴레오는 말하기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두가지로 계시하셨는데 하나는 성경이요 또 하나는 자연이다. 자연으로부터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으며 부여하신 질서를 탐구할 수 있다. 이것이 자연과학의 본질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학문 외에도 성경으로부터 다른 학문의 기초도 발견할 수 있다. 정치학, 경제학, 법학, 의학 등 많은 학문의 기초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따라 온전한 학문체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5. 참고문헌
[1] George G. Simpson, The Meaning of Evolution, rev. ed., Yale University Press, 1967.
[2] Richard Dawkins, The Blind Watchmaker, W. W. Norton, New York, 1996.
[3] Phillip E. Johnson, Reason in the Balance, InterVarsity Press, Downers Grove, 1995.
[4] Phillip E. Johnson, The Wedge of Truth, InterVarsity Press, Downers Grove, 2000.
[5] Henry M. Morris, The Biblical Basis for Modern Science,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1984.
[6] Duane Gish, Creation Scientists Answer Their Critics,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El Cajon, 1993.
[7] Phillip E. Johnson, Darwin on Trial, InterVarsity Press, Downers Grove, 1991.
[8] Michael Behe, Darwin's Black Box: The Biochemical Challenge to Evolution, Free Press, New York, 1996.
[9] William Demski, Intelligent Design: The Bridge Between Science & Theology, InterVarsity Press, Downers Grove, 1996.
[10] Lee Strobel, The Case for a Creator, Zondervan, Grand Rapid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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